불운의 화가 빈센트

어제의 화창한 하늘과 달리 아침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베르사유 궁전의 모델이 되었다는 보 르 비 콩트 성(Vaux-le-Vicomte) 투어를 예약해 둔 터라 만나는 장소로 향했다. 루브르 박물관 앞인 줄 알았으나 장소를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전화를 걸고, 길 가에 있는 한 호텔의 리셉션 데스크에 물어 물어, 약속시간보다 조금 늦게 만나는 장소인 투어 여행사에 도착했다. 늦어서 어쩌나 하면서 안내 데스크에 물어보았더니, 이런! 취소되었단다. 파리에서 머무는 숙소가 공짜 인터넷이 안 되는 통에 메일 확인을 못했더니 이런 황당한 사태가 벌어진 것이었다. 세찬 비에 흠뻑 젖은 몸으로 허탈했으나, 여행사 사무실에서 공짜 와이파이를 쓸 수 있다는 말에 여행에 필요한 지도를 다운로드하으며 젖은 옷이 마르기를 기다렸다.

옷을 어느 정도 말린 후 비 오는 날에는 미술관이 좋을 듯하여 피카소 미술관으로 향했다. 이름 아침이라 줄을 서지 않고 들어갔으나, 표를 사기 전 마음이 바뀌었다. 내가 이 비용을 내고 들어갈 만큼 피카소를 좋아하는가? 아니면 그가 단지 유명한 사람이어서 전시회를 보고 싶은가? 나는 그의 그림을 보면 잘 이해가 가는가? 그런 질문들을 던지고 과감히 미술관을 떠나 나왔다.  피카소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오아즈 마을로 건너가는 지하도

목적지를 잃은 후 잠시 고민하다 파리 북역으로 향했다. 거기에서 빈센트 반 고흐의 마을로 가는 직행 기차가 있다는 사실이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마을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되겠거니 하는 마음을 가지고 북역에 도착했다. 기대와 달리 안내 데스크에서는 반 고흐의 마을을 알지 못했고, 기차역으로 지하철역으로 이리저리 뛰다가 운 좋게 기차역 고객센터 안내요원의 도움을 받아 마을 이름을 찾았다. 오베르 쉬르 오아즈(AuversSur Oise). 지금도 외워지지 않는 이 이름이 적힌 종이를 보이며 표를 잘 샀는데, 개찰구 직원의 농간(?)으로 10분 정도를 헤매다 간신히 기차를 탔다. 상황은 이랬다. 표를 보여주고 타기 전 개찰구 여자 직원에 게이 곳이 타는 곳이 맞냐고 물었는데, 매우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이곳이 아니라며, 플랫폼 10으로 나를 보냈다. 찾아간 플랫폼 10에서 다른 승무원이 내가 왔던 방향의 플랫폼을 가리키며 저쪽이 맞다고 했다. 결국 먼저 갔던 개찰구의 다른 남자 직원에게 묻고서야 기차를 제대로 탈 수 있었다. 힘겹게 기차를 타고나서, 머릿속에 프랑스어 못하는 외국인에게 길을 잘못 가르쳐주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나의 오해인지는 모르지만, 그 직원이 나를 일부러 골탕 먹인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머, 빈센트 반 고흐의 마을로 가는 기차를 탔으니까.

내가 탄 기차는 직행이 아니었고, 오베르 쉬르 오아즈로 가기 위해서는 한 번 갈아타는 일반 기차였다. 일요일이어서 그런지 기차는 매우 한산했고, 나중에는 나 혼자  기차 칸에 타고 있었다. 창밖의 풍경은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오아즈 역에 내리자 인상파 풍의 그림들이 나를 반겼다. 그림들이 그려진 지하도를 건너 기차역을 나오니 아름다운 전원 마을이 펼쳐졌다. 역 근처 공원에는 고흐의 동상과 길바닥의 빈센트라는 이름이 새겨진 표식이 이 곳이 고흐의 마을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공원 옆에는 마을 관광 안내소가 있어서 지도를 얻었다. 조금 더 올라가니 고흐가 머물던 여관(Auberge Ravoux)이 있었고, 여관에 들어가기 위해 표를 사고 시간이 되기까지 마을을 좀 더 둘러보았다.


내가 피카소가 아닌 고흐를 택한 데에는 내가 유난히 고흐의 팬이어서는 아니었다. 피카소보다는 조금 더 관심 가는 화가. 그 정도가 고흐에 대한 내 태도이다. 유명한 사람 고흐가 내 삶에서 조금 다르게 인식된 것은 어느 대학원 선배의 고흐 그림에 대한 코멘트 때문이었다. “고흐의 그림 멋지지 않니? 변화하는 세상을 흐르는 듯한 붓터치로 그리다니 말이야.”당시 나는 불교 공부를 하고 있었기에 선배의 그 말을 듣는 순간, 고흐가 본 세상이 깊이 수행하는 이들이 보는 세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불교에서는 나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것이 찰나찰나 변한다고 한다. 다만 우리의 의식은 그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알지 못하는 것일 뿐이며, 순간순간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다 보면, 그 변화의 순간을 지켜보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고 한다. 그 변화의 연속적 흐름을 나타내기 위해 고흐가 흐르는 듯한 그림을 그린 것인지는 모르지만, 선배의 그러한 코멘트로 인해 고흐는 내 세계와 연결되었다.

고흐의 마을을 선택한 이유는 그의 그림보다는 그의 삶에 있었다. 생전에는 평생 그림 한 점 밖에 팔 수 없었던 무명의 화가가 죽은 지 백 년 뒤에는 세상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가 되어 버린 그의 슬픈 삶 때문이었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 좌절감과 우울감에 힘들었던 상황이었기에 스스로를 실패자로 생각하고, 우울하게 세상을 살아가던 그가 살던 곳을 한 번 보고 싶었다. 우울해지고 싶어서 우울한 곳을 찾아 유럽여행을 왔다는 어느 여학생처럼, 나도 나의 아픔과 공명할 수 있는 이, 아니 나보다 더 힘든 삶을 살았던 이가 살던 곳을 찾아 자석처럼 끌려왔는지 모르겠다.

마을의 빈센트 표식

2:30분. 고흐가 머물던 여관방에 들어가 보았다. 작은 방에 침대와 세면대가 달랑 하나. 그 방에서 그는 매일매일 팔리지도 않는 그림을 그렸다. 그의 꿈은 그 방에서 작은 개인 전시회를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이 묘했다. 생전에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사후에 그의 그림은 세계의 유명 미술관에 항상 전시되어 있고, 특별전 때는 세계 곳곳의 전시관에서 전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의 아이러니. 그는 꿈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을까? 사후에, 그것도 1-2년 뒤도 아니라 수십 년 후에 빛을 보게 되는 게 그에게는 의미나 있을까?

  여관방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들었다. 고흐는 자살한 게 아니라 동네 불량배에게 죽음을 당한 것일 꺼라 한다. 그 근거로 그가 죽기 전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내용의 일부를 보여주었는데, 그곳에서 오아즈에서의 행복한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한다. 기분도 훨씬 좋아졌고, 그림의 영감을 많이 얻어 행복해하던 그가 자살을 할 이유는 없어 보였다. 자살이 아니라 타살일 수 있다는 이야기에 약간의 희망과 함께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렇게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던 무명화 가는 죽었다. 아마 당시에 여관에서는 그의 죽음에 별로 주목하지 않았을 텐데, 지금은 그곳을 6유로의 입장료를 받으며 보여주고 있다. 세상이란..

 여관방을 나와 마을 안내소 뒷길(RueDaubigy)의 담벼락을 따라 오아즈 마을을 구경해보았다. 하늘이 흐릿하고 때 로비가 내리긴 했지만, 아래쪽에 보이는 마을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 같았고, 길 옆에 자리 잡은 집들은 이뻤다. 마을이 너무 이뻐서 그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마을은 고흐뿐만 아니라 다른 인상파 화가에게서도 사랑받았던 곳으로 세잔, 피사로 등이 여기에서 작품 활동을 했었다고 한다.  반 고흐가 그린 들판이 마을 근처라 해서 걸어가다가 너무 멀어 포기하고 고흐의 무덤으로 향했다.

고흐의 무덤으로 가는 곳에 반 고흐가 그린 유명한 오아즈 교회를 만나 인증숏을 찍고, 무덤이 있는 공중 묘지로 걸어갔다. 비가 왔던 흐린 날이어서인지 올라가는 길의 들판이 왠지 더 스산하게 느껴졌다. 올라가서 고흐의 묘지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했는데, 다행히도 고흐의 무덤을 찾아온 듯 해 보이는 여행객이 보여 뒤따라 갔다. 그녀는 한순간의 헤맴도 없이 고흐의 무덤으로 나를 이끌어 주었다. 담쟁이로 덮여있는 고흐의 무덤은 동생과 함께였다. 평생 형을 뒷바라지 해준 동생과 그 도움을 그림에 몰두할 수 있었던 고흐, 어느 누구도 고흐의 그림이 갖게 된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그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가 되었다.


고흐와 나와는 의도치 않은 인연이 종종 있어왔다. 워싱턴의 내셔널 갤러리에 갔을 때 내가 제일 처음 본 유명한 서양화가의 그림이 고흐의 자화상이었고, 미국 유학시절, 학생들의 주택 협동조합 주택에 입주했을 때, 집 정리를 하다가 발견했던 게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그림 퍼즐이었다. 분해되어 있는 퍼즐을 다시 맞추고 뒤에는 녹테 이프를 붙여 유학기간 내내 벽에 붙여 놓고 살았었다. 이번 배낭여행 때에도 오아즈 마을을 넣을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원래 일정에서는 빼 논 것이었는데, 이렇게 우연처럼 우여곡절 끝에 그가 생애 마지막 시간을 보냈던 마을을 방문했다. 이번에 오아즈 마을에서 만난 고흐는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어떤 절망적인 상황이 오더라도 꾸준히 꾸준히 하라고. 꿈은 죽은 이후에 이루어질 수도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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