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심판론-이제는 버려야할 카드.

보궐선거 결과가 여당3, 무소속 1명으로 나왔다. 결과에 대해 언론들의 분석들과 썰이 난무하는 가운데, 재보선 결과를 성완종 리스트의 면죄부로 끌고가려는 움직임이 보인다.흥미롭게도  선거 전에 이미 보수계열 신문들을 위시한 많은 신문들이 우윤근 새정치연합 원내대표의 말을 인용하며”새누리당에 승리를 안겨준다면 집권여당에 면죄부를 주는 것과 다름 없다.”라는 기사를  썼다. 우 원내대표가 정확하게 어떤 말을 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소위 보수 언론들은 이미 보궐 를 선거를 성완종 리스트의 면죄부로 활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반면 진보계열 신문에서는 우 원내대표가4.29 재보궐 선거를 부패와 반부패의 구도로 이야기했다는 기사는 있지만,  면죄부운운 기사는 한 줄도 찾을 수 없었다.  이 기사를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은 우 원내대표는 부패한 정권의 심판장으로  보궐 선거를 연결하며 정권 심판론의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것이다.그러나 비록 성완종 리스트가 정국을 뒤흔들었다 하더라도, 정권 심판론을 꺼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부패척결 문제는 선거와 연계되어서는 안된다.  부패는 법치주의의 원칙을 어긴 것이고, 민주주의의 뿌리를 흔드는 요인이다.  그건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척결되어야 하는 별개의 문제이다.선거는 선거고 부패척결은 부패척결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 두 문제가 연결될 수 있는가? 이 둘을 연결 시키는 것 자체가 정치가의 도덕성을 실종시키고 있고 무책임의 정치를 양산하고 있다.  게다가 국회는 입법부이지 행정부가 아니다.입법부의 사람을 뽑는데 비록 연루된 사람들이 과거 여당 국회의원이었다 하더라도  정부의 전현직 실세들이 관여되어 있는 문제에 국회의원 선거를 연결시키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희석시킨다. 원래 문제는 부패척결인데,정권심판론으로 인해 판만 커지고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가 공중분해되고 있다.

둘째, 부패 정권 심판론을 꺼내기에는 새정치 연합이 도덕적으로 우월하지 않았다. 사실여부를 떠나서 지난 정권동안 새정치연합의 핵심인사들의 도덕성문제가 도마에 올랐었다.  그 여파로 이미 많은 국민들에게 새정치 연합의 이미지는 새누리와 다르지 않은 부패정당이다.게다가성완종 사면 문제 또한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부패정권 심판론은 부메랑으로 돌아오기 딱 좋은 전략이었다.인간은 완벽하지 않고, 세상에 털어서 먼지안나는 사람은 없다.과거 독재정권하에서는 어떤 문제가 있어도 군사독재에 저항하다는 것만으로 도덕적으로 우월함을 내세울 수 있었으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게다가 새누리당을 비롯한 보수진영이 오래도록 써왔던 프레임이 ‘진보 진영 너희도 우리랑 똑같이 부패하지 않았나’하는 물타기 전력이었다. 이 상황에서 부패정권 심파론이 효과가 있을까?

셋째,  4군데 재보궐 선거는 국민 전체 대표성을 지니지 못한다.  전체 지역구 의석수 246명 가운데 겨우 4군데 지역 국회의원 선거가 어떻게 대표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게다가  그 가운데 두 군데는 오랜 기간 여당 우세지역이었다. 기본적으로 반타작을 하면 다행인 선거였고, 초기에 새정연도 1군데라도 이기게 되면 다행이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이미 새정치도 대표성이 없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 성완종 스캔들이 터졌다고 부패와 반부패의 정권 심판론을 들고 보궐선거에 대표성을 부여한 것을 오만하다고 해야하는 걸까? 부패관련자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야할까?

사실 정권 심판론은 이미 두번 실패한 전략이다. 지난 대선과 지방 선거때 정권심판론으로 새정연은 두 번 다 실패 했다.새정연의 태도를 보면 아직도 그 부분을 지각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지난 번 대선에서의 실패를 제대로 분석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현실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전혀 상황파악을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 국정원의 정치개입이 영향을 주었다 하더라도,그것을 넘어설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면,  결과는 달랐을 꺼다.  새정치연합의 대선 패배는 단순히 국정원 개입이 문제가 아니었다. 더 큰 이유는 새정연이  국민들이 원하는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새정연은 2/3정도의 국민이 지지할 정도의 새로운 미래를 제시하지 못했다.그런데 이번 보궐 선거에서도 똑같은 오류를 범했다.
정권심판론은 이제 유통기한이 지난 전략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많은 국민들은 이미 변해 있었다.  그리고 그 변화를 만들어 낸 것은 바로 다름 아닌 노무현 정부였다.기대에 부풀었던 민주화 정부 기간 동안 국민들이 체감할 만한 큰 변화를 끌어내지 못하고 현실과 적절히 타협했다.  칼을 뽑았어도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하니 오히려 국민 간의 대립 전선을 만들었다.  언론의 자유를 제공했지만, 그와함께 지켜야할 책임선이 있음을 같이 제공하지 못했었다. 성과는 있었지만,그것을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리지도 못했다.게다가 체감 경제 효과가 크지 않았기에  사람들 사이에 개발중심의 산업화시대의 향수가 형성되었다.물론 거기에는 언론의 역할이 컸지만, 그 결과 일명 정의감보다는 이익을 쫓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국민 정서가 이렇게 변한 상황에서 정의감을 호소하는 게 먹힐까?  그게 벌써 8년 전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문제가 많은 정권 심판론을 들고 선거를 치렀으니 당연히 패배를 할 수 밖에 없다. 이제는 안일하게 정권 심판론으로 이익을 보리라는 생각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 이를 위해 새정연은 정권 심판론을 앞세워 일명 진보 세력의 큰형 노릇하려는 태도부터 버려야 한다. 나아가 과거 대선의 실패를 처절하게 성찰해야한다.김종인씨는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을 선택한 이유를 자신이 생각한 경제민주화를 실현할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라 했다. 대통령이 된 뒤 박대통령이 대부분의 중심 공약을 파기하면서 경제 민주화도 물건너 갔지만,왜 대선 당시 새정연은 김종인씨에게 신뢰감을 주지 못했는지,  이 부분도 생각해봐야한다. 단순한 우클릭이 국민의 지지를 얻게 해주지는 않는다. 이제 좌우의 구별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새정치연합은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하는지도, 국민들이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도, 자신들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보여지고 있는지도전혀 모르는 것 같다. 매번 반복되는 물타기에 당하면서도 승산없는 정권 심판론을 들고나오며 악순환의 고리에서 헤매는 새정치연합을 보고 있자면,경청 능력,소통능력의 부재는 단지 박대통령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과거 독재정권을 비판하면서 국민의 지지를 얻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새정연이 미래 한국에 대한 제대로 된 비전을 내놓지 못한다면, 그리고 그걸 실천할 수 있음을 증명해내지 못한다면 총선이든,대선이든 승리할 수 없을 것이다. 야당이 야당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국민들의 미래 또한 밝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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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it a Feminist Act to Stay in a Patriarchal Tradition? by Gina Messina-Dysert

lucyjee:

This is very good topic. What if we added a female form to the holy figures of God…It could be an action for one step further. In Buddhism, Guanyin (Avalokiteśvara) changed its form to female in East Asia. Sometimes it has hermaphroditic form, for example, female body with mustache. We could write a new story about God.

Originally posted on :

Should women (or men) maintain a religious identity within a patriarchal tradition?  Is it a feminist act to stay? Or is it only a feminist act to leave?  These are questions that regularly surface in conversations related to religion and are often the center of dialogue here on Feminism and Religion.

I have often thought that change can only take place from within.  Certainly we can see the progress made by foresisters who have struggled within their traditions for change; Rosemary Radford Ruether, Mary Hunt, Amina Wadud, Judith Plaskow, and the list goes on.  These women have greatly impacted our understanding of misogynistic practices within their respective traditions and have educated us on how religions need to live out their teach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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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김리나 외, 한국불교미술사(조각부분)

한국불교미술사를 한눈에 훑어보기에 좋은 책이다. 한국불교미술을 조각, 회화, 공예 세부분으로 나누어 각각을 그 시대의 사조, 재료와 제작기법, 후원자로 나누어 깔끔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맨 뒤에 용어해설을 덧붙여서 처음 불교미술사를 접하는 사람도 이해하기 쉽게 도와주고 있다.

나같은 초심자에게 조각의 시대적 특징을 가장 쉽게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수인(손 모양)이었다. 옷자락이나, 얼굴모습, 전체 비율등이 시대에 따라 달라지지만, 그건 좀 섬세해서 지금 수준에서 내가 파악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수인을 중심으로 일단 정리하고자 한다.

5C  불상의 경우 두 손을 마주잡은 선정인 좌상(앉은 모습)이 유행했던 반면, 6C 불상은 오른손을 두려움이 없게 보호해준다는 시무외인과 왼손은 소원을 받아주는 여원인을 가진 일명 통인(두 수인을 합쳤다하여)의 입상(서 있는 모습)이 유행했었다.   6C 말에는 불상 뒤에 전체 광배(아우라를 상징하는 판)가 있고, 다른 두 부처(아미타불과 미륵불)이 함께 있는 삼존불이 유행하였다. 또한 이 시기에는 금동불 뿐만 아니라 마애불도 만들어지기 시작했는데, 수인은 통인이다.

7C 의 불상은 수대 영향을 많이 받아서 U자형 주름 처리가 단순화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신라지역에서는 오른손에 모든 소원을 다 들어주는 보주를 들고 왼손은 시무외인을 취하는 새로운 수인이 등장하였다. 또한 이 불상들은 이전의 U자형 옷이 아니라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편단우견의 옷차림을 하고 있으며, 오른쪽 엉덩이를 살짝 올리고 있다. 이는 굽타시대의 삼굴형태(S자형)의 영향으로 보이며, 동남아시아 조각과의 교류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 외에 백제에는 6C,  신라는 7C  미륵보살의 반가사유상이 제작되기 시작했는데, 미륵불이 , 이는 정토신앙의 일면을 보여준다고 한다.

7C 후반부터는 전법륜인, 합장인을 한 입상이 등장했다. 인도의 영향을 받아 서있는 다리위에 대칭의 옷 주름이 있는양식과 오른손은 설법인의 수인을 하는 입상이 있었다. 좌상의 경우 항마촉지인(오른손을 땅에 닿게 하는 수인, 석굴암 본존불의 수인)의 형태가 소개되었다.

8C 중반에는 지권인을 한 비로자나불이 소개되었는데, 중국과 일본의 경우 밀교주존으로 비로자나불상이 조성되었던 반면, 한국에서는 화엄 사상의 틀안에서 비로자나불상이 이해되고 실제로는 선종중심의 불교 사찰에 봉안되고 예배되었다. (p.65)

9C 통일신라시대 말에는 7C에 소개되었던 약사불이 대중에까지 널리 퍼졌다. 약사불은 왼손에는 약합이 올려져 있으며, 오른손은 당시까지 전해졌던 수인들, 시무외인, 여원인, 설법인, 항마촉지인이 조성되었다. 이는 통일신라 말의 질병퇴치와 관련한 현세구복성의 신앙형태와 관계가 있을 거라 한다.(p.68)

고려초기는 기존의 양식을 계승하며  철불이 많이 주조되었다. 이전에는 주로 금동불과 석조불 주류였는데, 통일신라시대 후대부터 철불이 추가되어 고려 때 성행한 것이다. 또한 조각의 예술적 우수성을 감소된 거석불이 등장하며 불상후원자의 권위를 과시하는데 사용되었다고 한다. (p.80)

고려 중기 11-13C 에는 남송,원나라의 영향으로 영락을 두른 불보살상이 나타난다.

고려 후기 원나라  통치기에는 티벳풍의 불상이 대거 수입, 제작되고, 아미타상이 유행했다. 많은 불보살상이 아미타수인을 취하고 있다. 나아가 천수관음보살좌상도 이 시기에 제작되었다.

조선시대는 이전시대를 계승하면서 독자적 조선불상의 형식을 갖추어갔다. “불신에 비해 머리가 커지고, 사각형의 얼굴에 이목구비 표현도 직선적으로 변화하며, 통견의 법의 옷주름은 몇가지 형식으로 굳어져서 계속 답습되는 경향이 강해졌다” (p.101)고 한다.  그리고 아미타삼존불( 대세지/관음, 지장/관음) 석가삼존불(보현/문수) 외에 삼신불(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석가모니불)이나 공간적 삼세불(아미타불, 석가모니불, 약사불)을 모신 곳이 많아졌다고 한다. 건칠불, 목불 외에 흙으로 만든 소조불들이 17세기 이후 성행했다.

조선시대 때 대중불교의 신앙대상으로 유행했던 것은 사후 세계 다스리고 중생을 구제하는 지장보살(과 그 권속인 무독귀왕과 도명존자), 대중 업보 다스리는 시왕상, 그리고 고승의 모습으로 표현되는 십육나한상이다. (p.122)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후 지장보살과 지옥과 관련된 시왕상의 더욱 유행했었다고 한다.  나한은 미륵불이 오기 전까지 정법을 수호하고 중생을 도와주는 존재이므로 이 또한 두 전쟁의 여파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흥미로왔던 것은 불상 안에 복장이라 하여 발원문을 비롯하여 오장육부를 천으로 만들어 넣기도 했다. 이는 불상에 생명력을 불어 넣고 주술적 힘을 부여하기 위한 것이다.

–김리나 외, <한국불교미술사>, 미진사, 2011

수인

수인그림 출처: http://www.shilla.or.kr/sub7.html?post_code=3&cate_code=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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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오불회도

<한국불교 미술사> 책에서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조선시대 때 여러 부처님을 하나에 담은 오불회도, 사불회도, 육불회도가 그려졌고 이는 조선 초기 불교 종파의 통폐합과 연관이 있을 수 있다고 한다. 책에서는 추정이라는 단서를 붙이긴 했지만, 국가의 강제적 통폐합이 그림에도 이렇게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놀랍다. 물론 책에서 언급한대로 “특정 종파에 관계없이 다불을 조성하면 부처의 위신력이 더욱 강해질 것이라는 믿음”도 작용을 했겠지만, 이는 갑자기 그런 믿음을 갖게 된 게 설명이 안된다.

부처는 그 상징적 몸에 따라서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석가모니불로 나눈다.  비로자나불은 법신(진리 그 자체를 상징하는 몸으로 일종의 본체), 노사나불은 보신(과보에 의한 공덕을 상징하는 몸), 석가모니불은 화신(중생교화를 위해 세상에 나타나는 몸)을 말한다. 이것이 삼신불이다.

그리고 부처가 머무는 공간에 따라 중앙은 석가불, 서쪽은 아미타불, 동쪽은 약사불 이렇게 삼세불이 있다. 원래는 시간에 따라 과거의 연등불, 현재의 석가불, 미래의 미륵불을 의미했었으나, 수나라 때 연등불 대신에 아미타불이 모셔지게되고, 약간의 변천과정을 거쳐, 원나라 시대에는 시간적 삼세불 대신에 공간적 삼세불이 신앙의 대상으로 모셔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삼신불과 삼세불이 합쳐져서 오불회도, 사불회도(노사나불 빠짐), 육불회도가 만들어졌다. 책에 의하면, 오불회도는 화엄신앙(비로자나불)과 법화신앙(석가모니불)을 통합한 형태로, 통합주체는 전기에는 비로자나불이었던 반면 후대에는 석가모니불로 바뀌어갔다고 한다.  책에 소개된 오불회도는 세가지로 주륜지의오불회도, 칠장사의 오불회괘불도, 부석사의 괘불도이다.

1467년도에 제작되어 현재 일본 효고현 주륜지에  있는 오불회도는 삼신불과 삼세불을 십자형으로 배치하고 있다. 위로부터 비로자나불-노사나불-석가모니불 이렇게 종적으로 배치하고,  노사나불 왼편에 아미타불을 오른편에 약사불을 횡적으로 배치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에 대해 어느 분은 종적은 자력신앙의 길을 횡적배치는 타력신앙을 상징하고 있다고 도 설명한다.  (http://cafe.sayclub.com/cb_board.nwz?tbtype=&act=read&clubsrl=22290&bsrl=107&page=5&aseq=147737597)

1628년 제작된 안성 칠장사의 오불회괘불도의 경우는 눈에 띄게 비로자나불이 중심에 놓여있다. (http://blog.daum.net/0118983530/8438506)

반면 1745년에 제작된 부석사 괘불도는 석가모니불 중심으로 전개되어 있다. 이는 영산의식의 성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한다.  (http://data.kdata.kr/page/Scroll_Painting_of_Five_Buddhas_and_Congregation_at_Buseok_Temple_in_Yeongju)

오불회도를 보면서 지난번 로스트킹덤 전시회에 있었던 쉬바신과 비슈누신의 아수라 조각상이 생각났다. 그때도 시대적 상황에 따라 두 신상이 하나로 결합되었었다.  시대의 요청이 었든, 국가의 통제였든지 조선시대에 종단이 합해지자, 불화도 합해지고, 시대의 신앙과 예식의 유행에 같은 주제의 그림이라도 다르게 그려졌다.  생각보다 모든 것을 연결되어 있었다.

출전: 김리나 외, <한국불교 미술사>, 미진 출판사, 2011, pp.214-216.

삼세불 참고: http://blog.hani.co.kr/seongho0805/9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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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hibition] Lost King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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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메트로 폴리탄 뮤지엄에서 열리는 초기 동남아시아 조각전 (Lost Kingdom)에 다녀왔다. 항상 쫓기며 다니던 박물관 관광이 아니라 시간을 가지고 2시간 넘게 작품을 하나하나 볼 수 있어서 좀 더 많은 것을 기억하고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근대 이전의 많은 미술품들은 지역에 관계없이 종교와 관련 있는데 이번 전시회도 예외가 아니었다.

동남아 조각전이었기에 당연히 불상들만 있을 줄 알았으나, 의외로 힌두신상들이 많았다. 초기에 힌두교와 불교가 같이 전파되었고, 둘의 경쟁시기를 거쳐서 불교가 국가종교로 자리를 잡았던 것이었다. 그래서 힌두교 전통 또한 뿌리 내려있었다. 내가 알던 것과 달리 힌두교는 인도의 지역종교가 아니라 동남아를 관통하는 하나의 문화였던 거다. 도교문화의 일부가 한국 일본 문화에 흡수되어 있는 것과 유사하지만, 실제 힌두교의 동남아 지역의 영향은 그 보다 더 영향력이 컸던 것 같다.

전시된 조각상 속에서 역사 안에 살아있는 인간들의 기본적 욕망들을 엿볼 수 있었다.

권력을 장악하고 유지하려는 것은 어느 기득권이나 똑같았다. 힌두신 비슈누는 그가 가진 ‘질서 유지’의 상징때문에 왕권수호의 신으로 동남아 지역에서 받들어졌다. 참고로 힌두교의 중요한 다른 두 신인 브라만과 쉬바는 각각 창조와 죽음을 상징한다. 후대에 갈 수록 브라만의  창조의 속성은 쉬바나 비슈누에 흡수되어 브라만은 명목상의 창조신의 자리를 유지하긴 한다. 후대 비슈누와 관련된 신화에서 브라만은 자면서 휴식을 취하는 비슈누의 배꼽에서 자란 연꽃에서 태어나 세상을 창조한 것으로 나온다.  쉬바가 아닌 비슈누가 왕권수호신으로 숭배되었던 것이 흥미로왔다. 신이라는 존재에 의지하면서 그렇게까지 지키고 싶은 게 권력인 거였다. 그렇게 보면 한국의 기득권층의 권력유지 욕망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인간사에서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부유함과 건강일 것이다.  쉬바와 그의 가족은 이러한 세속적인 부와 풍요로움, 건강을 부여해주는 신으로 숭배되었다. 쉬바는 삼신체계에서 파괴와 혼돈을 담당하긴하지만, 실제 사람들의 신앙생활에서 생명력과 번식력과 관계되어 있다. 그리이스 식으로 보면 디오니소스적 에너지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비슈는는 아폴론에 비유해볼 수 있다. 그래서 쉬바는 신의 형상 뿐만 아니라 남근 (링가) 형상으로도 숭배된다. 세계 제일의 신의 자리를 다툴 때 쉬바가 힘찬 남근의 용솟음으로 제일 높은 곳에 먼저 올라가 브라만과 비슈누를  굴복시켰다는 신화도 있다. 그 외에 그는 수행력이 높은 요기로도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의 아들 가네샤는 부를 가져오고 건강과 재앙을 막아주는 신으로 인도 뿐만 아니라 동남아 지역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편 후대에는 쉬바와 비슈누가 한 상에 반쪽씩 합쳐져 나타나며 이 모든 욕망을 한꺼번에 통합하여 투사하고 있기도 했다.

불교 조각들도 이런 기복신앙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보살신앙을 중심으로 기복적 요소가 여전히 지속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보살의 수인이 주로 오른손은 소원을 들어주는 여원인과 왼손은 연꽃을 쥐고 있다는 점이다. 불상의 경우는 선정인과 항마인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한국이나 동아시아에서 볼 수 있는 통인(여원인과 보호를 이야기하는 시무외인)은 불상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가네샤상에서만 볼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는 조각들이 동아시아 불상들처럼 옷주름이 화려하게 묘사되지 않고 거의 민자에 가깝게 옷주름이 없었다. 그리고 후기 조각의 경우, 즉 인도에서 들여온 조각품의 모사가 아닌 후대 작품의 경우 동남아시아인의 인상을 닮았었다.

동남아시아 조각들. 지역적 특성에 따라 조각의 모양은 달라졌지만, 그 안의 면면히 흐르는 인간의 욕망들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종교는 어쩌면 이러한 욕망들, 부와 건강/안전, 더 나아가 이 둘을 거머쥘 수 있는 권력에 대한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또 다른 욕망의 발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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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 Robert Sharf- mindfulness or mindlessness

This is a talk about the origin of mindfulness in America and critique of it.  Sharf is a prominent Buddhist scholar. According to his talk Burmese mindfulness practice became a basis of mindfulness in America. And he criticizes the absence of  morality in mindfulness practice in alignment with Zen tradition of Mazu and Japanese Zen tradition. It would be good to see together with the previous talk “The healing power of mindfulness” by Jon Kabat Zinn. which I uploaded.

로버트 샤프는 버클리대 교수로 미국 불교계에서는 날카로운 비판을 던지는 역할을 하는 학자이다. 그의 명성에 걸맞게 그는 미국 명상(mindfunlness, 엄밀하게 말하면 사티, 알아차림)의 유래의 역사를 잘 정리하고, 미국 명상의 문제점을 선불교의 역사에 빗대어 비판하고 있다. 미국 내 위빠사나 명상은 미얀마(버마) 승려 마하시에 의해서 전파되었는데, 그의 명상법은 기존에는 없던, 기존 전통을 개혁하면서  형성된 것이었다. 샤프는 이러한 전통에 도전하는 움직임이 중국의 선불교였고 위빠사나 명상과 선불교는 현재에 집중하고 판단을 하지 않으며 고요한 상태에서 머물기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보인다고 정리하였다. 그러나 이어서 그는 이 부분이 도덕적 판단의 유보를 불러일으키는 문제가 발생한다면서 이를 종밀의 말을 빌어 선병이라 비판하였다. 그리고 이 지점이 일본에서 비판불교가 발생한 이유라 설명하고 있다.  이 영상을 앞서 올린 카바진의 영상과 같이 보면 현재 미국의 명상붐의 현주소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의 깔끔한 정리와 명료한 주장과 근거에는 이견이 없으나 비판의 지점에 대해서는 일부분밖에 동의할 수 없다. 물론 그의 지적처럼 위와 같은 명상 수행이 결국은 지혜를 결여하고 도덕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으며, 실제 역사 속에서 그런 사례들이 많았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선불교의 경우 도덕적 판단을 넘어서는 경지를 논하는 것이라서 도덕성을 결여한다고 단정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리고, 선은 사마티를 강조하는 수행이며 위빠사나를 강조하는 수행이 아니다. 샤프의 말을 듣고 이 글을 쓰면서 그가 설명하는 미국 내 위빠사나는 위빠사나가 오히려 사마티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강의를 통해 두 가지 검토해야할 것들이 나왔다. 미국 내 위빠사나 수행은 어디에 방점을 두고 있는지, 그리고 비판불교의 발생원인에 대한 재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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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 Jon Kabat zinn – “The healing power of mindfulness”

Kabat Zinn is the frontier in applying mindfulness to healing stress in scientific basis. He gave us several points on mindfulness. Mindfulness is concentrating present moment. It doesn’t mean changing yourself rather it is recognizing your inner beauty.

존 카바진은 미국에서 의학과 명상을 처음 접목시킨 사람이다. 지금 미국의 명상붐은 이 사람의 노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시간 반의 강연 동안 이야기가 왔다갔다하긴 하는데 핵심은 현재 이 순간에 집중하라는 것과 내 자신이 얼마나 엄청난 존재인지를 긍정하라는 것이었다.

또한 평생을 명상의 스트레스 감소 효과에 대해 연구한 그의 힐링에 대한 정의가 독특한데 “불평하지 않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coming to terms with things as they are).”이었다. 이 모든 것은 이미 선불교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에게는 이게 새로운 방식의 인식이겟지만, 사실 한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알려진, 그러나 근대화에 의해 버려지고 잊혀진 삶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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