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유럽인가

유럽 배낭여행은 오래전부터 내가 동경해왔던 꿈이었다. 내가 대학생일 때 배낭여행과 해외연수가 붐을 이루기 시작했다. 그러나 언제나 꿈만 꾸었지, 한 번도 진짜 이번엔 가보자 하는 생각을 못했다. 딱 한 번, 친구에게서 일주일 뒤에 유럽으로 여행을 가지는 전화가 온 적이 있었으나 농활을 간다는 이유로 포기했다. 그 이후에는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고,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기억 저 편에 묻어 두었었다. 이번 여행은 시간은 있으나 돈은 여유가 없는 상황이었지만, 무리해서 가기로 했다. 몇 달 간이 우울과 며칠 간의 죽음의 욕망을 떨쳐버렸을 때, 의욕 상실이었던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이 유럽 배낭여행 정보를 모으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나는 왜 그토록 여행을 가고 싶어 했을까?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을 때,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떠남과 휴식이었다. 이 숨 막히는 공간에서 벗어나면 무언가 달라질 수 있으리라는 기대. 그래서 알아보았던 곳이 프랑스의 플럼 빌리지였다. 틱낫한 스님이 운영하는 유명한 수행처로 잘 알려진 곳이었다. 그러나 마음을 바꾸었다. 한국의 많은 수행처를 놔두고 은행에 얼마 남지 않은 비상금을 써가며 가는 것이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그 대신, 견문을 넓히는 방향으로 여행의 목적을 바꾸었다. 또한 늦은 나이에 여자 혼자서 가는 배낭여행의 경험을 통해 나의 생존본능을 일깨우고 싶어 졌다. 한 달간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나면, 잃어버린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느 순간 여행의 목적은 휴식이 아니라 모험과 도전이 되었다.

그러면 왜 다른 나라가 아니라 유럽일까? 세상에는 많은 나라들이 있다. 가까운 중국, 일본, 베트남, 캄보디아, 페루, 브라질, 이집트… 그 많은 나라들, 심지어 가까이 있는 나라들을 두고 난 왜 유럽으로 가려고 하는 걸까? 이 질문은 출발 전, 나를 괴롭혔지만, 당시에는 답을 얻을 수 없었다. 그러다 여행 중에 만난 여행자들과 유럽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주 우연히 이 질문에 대해 답을 얻었다.


유럽을 여행면서 많은 여행객을 만날 수 있었고 가끔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로스타를 기다리며 만난 호주에서 온 노부부는 평생의 소원인 유럽여행을 왔다며 너무 기뻐했다. 자신들의 선조들이 오래전 살았던 유럽이라는 곳을 직접 보고 싶었다고 했다. 여행 중간중간에 호주에서 온 젊은이들도 몇 만났는데, 대부분이 넉 달 정도의 달 이상의 긴 여행을 하고 있었다. 호주는 유럽에서 너무나 멀기에 호주인들은 그렇게 장기 휴가를 얻어서 유럽 여행을 하는 것을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고 했다. 고향에 대한 향수는 호주인들도 한국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대만에서는 영어를 가르쳤었다는 중국인 친구는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식당에서 일을 하며 모은 돈으로 대만에 돌아가기 전에 여행을 하고 있었다. 특정 음악제에 참여하기 위해, 또는 비디오 영상 채팅에서 알게 된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 왔었다는 일본인도 보았다.

유스호스텔에서 머무르면서 나 홀로 여행하는 젊은 한국 여성들도 만났는데 각각의 여행의 사연은 비슷한 듯 달랐다. 한 친구는 대학 졸업 후 그동안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을 들고 여행을 왔다고 했다. 아버지께서는 반대했지만, 어머니는 맘에 드는 곳이 있으면 그곳에 머물러도 된다며 적극 지지해 주셨다고 하였다. 갑갑한 한국의 취업 현실 속에 희망을 꿈 꾸며 나온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그녀의 젊음이 못내 부러웠다. 아직 그녀는 나보다 더 많은 시간을 가지고 이룰 수 있다는 부러움이었다. 직장인으로 여유를 가지고 온 사람들도 있었다. 직장을 다니다가 모네의 그림이 너무 좋아서 실제 장소를 직접 보고 싶어 온 친구도 있었고, 영국에서의 한 달 연수를 마치고 귀국 전 짧은 파리 여행을 온 사람도 있었다. 대학생들 가운데에는 1년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아 유럽여행을 온 여학생이 꽤 많았다. 이제 여행을 시작한 지 2주 정도 되었다는 여학생은 여행의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하루하루가 너무 재미있고 빨리 흘러가서 예정한 45일이 너무 짧다고 아쉬워했다. 한편 여행의 마지막 날을 맞이하는 또 다른 여학생은 외로움과 여독으로 약간 지쳐서 생각이 많았다.

“얼마나 머무세요?” 내 가물 었다.

“내일 한국으로 돌아가요. 한국에 가게 되어서 기뻐요.”

“여행이 재미없었나 봐요?”

나의 이어지는 질문에 그녀가 대답했다.

“여행 초반에는 정말 너무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뭐 하고 있는 건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유명한 관광지에서 사진을 찍다가 어느 순간 지쳐버렸어요. 남들 다 하는 것 하러 여기에 왔나… 여기 오기 전 프라하에서 일주일 정도 지내게 되었는데, 그때는 너무 좋았어요. 골목골목 돌아다니는 것도 좋았고, 외국 친구들과 패러글라이딩도 하러 갔고, 제 여행을 하는 것 같았어요.”  지쳐서 한국에 돌아가게 돼서 기쁘다던 그녀였지만, 프라하의 일을 이야기할 때는 생기가 넘쳤다. 자신만의 여행. 그녀는 여행 끝자락에서 아주 소중한 경험을 했다.

그녀와의 대화는 나를 여행 전 질문으로 이끌었다.  ‘왜 난 유럽에 왔을까? 또는 가려고 할까?’ 해마다 많은 이들이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난다. 많은 이들이 에펠탑, 개선문, 런던 타워 등 사람들이 말하는 유명한 곳에 가서 사진 찍고, 사람들이 맛있다는 파리 뒷골목 맛집에 가서 인증샷을 찍어서 SNS에 올리고..  나 또한 그런 천편일률적 여행을 원하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는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로마에 가서 콜로세움을 안 보고 올 수는 없는 것이니까. 여행 전에는 밀레 그림을 보고 싶어 하던 그녀처럼 순수하게 자신만의 여행을 짜고 싶었지만, 첫 여행을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나의 선택 아래에는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어 하고, 보여주고 싶어 하는 욕망, 남들이 하는 것을 다 해보고 싶어 하는 욕망이 숨어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다른 나라가 아닌 유럽에 가게 된 데에는 나의 무의식적 욕망, 많은 이들이 가본 그곳을 나도 가보고 싶다는 마음의 역할도 컸다.

또 다른 이유는 내 안에 각인된 유럽에 대한 동경이었다. 베로나에서 미국에서 룸메이트로 같이 살았던 폴란드 친구의 집에서 머물렀었다. 그때 만난 친구들과 이야기하던 중, Truffle mushroom이 화제가 되었다. 그 버섯 이름을 듣는 순간, 오래전 동화책에서 돼지를 이용해 채취하는 귀한 버섯이라는 읽었던 기억이 났었다. 이번 여름을 지나면서 청와대 정찬에 사용되었다며 Trufflemushroom(송로버섯)이 장안의 화제가 되었지만, 내가 여행을 떠날 때만 해도 그 버섯은 그리 유명한 버섯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Truffle mushroom을 알고 있었다.  어릴 적 유럽 동화책을 참 많이 읽었었다. 오래전 일이라 까먹고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그 이국적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내 안에는 유럽에 대한 궁금증이 쌓여가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난 가톨릭 집안에서 자랐기에 유럽의 교회 문화에 대해 약간의 고향 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이태리를 여행하면서 교황의 나라인 바티칸 시티와 프란체스코 성인이 살던 아씨시를 방문하면서 먼지 모를 편안함을 느꼈었다. 마치 호주의 사람들이 고향을 찾듯 유럽을 가는 것처럼, 나는 몰랐지만, 내게도 그런 비슷한 감정과 유럽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휴식, 재충전, 생존본능의 회복, 견문을 넓히는 것 등 내가 표면으로 내건 이유는 많았지만, 결국 이 여행은 내가 나의 무의식과 마주하고 오랜동안의 숙원을 푸는 자리였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인이지만, 성장과정에서 서구의 세례를 흠뻑 받았던 나는 유럽에서 잊고 있던 나를 만났다.

originally published at https://brunch.co.kr/@lucyattic/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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