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앙뜨와네트의 집을 찾아서

쁘띠 뜨리아농

 

어릴 적 <베르사유의 장미>라는 만화책에 흠뻑 빠진 적이 있었다. 마리 앙뜨와네트의 남장 여성 경호원 오스칼 프랑소와 드잘즈라는 주인공을 내세워 그녀의 삶과 사랑을 다룬 이야기로 일본 만화가 이케다 리요코가 그렸다. 얼마나 그 만화 주인공을 좋아했는지, 주인공의 얼굴 그림을 가지고 있고 싶어서 친구에게 빌린 책을 돌려주기 전에 기름종이를 대고 주인공의 얼굴을 베껴 그렸을 정도였다. 요새야 복사가 흔하고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 것이 너무나 쉽지만, 당시는 복사라는 게 존재하지도 않았고, 사진기는 초등학생 꼬마 여자애가 만지기에는 너무나 귀한 물건이었다. 그 만화로 인해 내 기억 속의 마리 앙뜨와네트는 귀엽고 친근한 왕비였고, 베르사유 궁은 나의 만화 속 친구가 사는 낭만적인 곳이었다. 당연히 나는 베르사유 궁전이 보고 싶었고, 과감하게 궁전 입장을 포함한 자전거 투어를 신청했다.

파리 자전거 사무소에 모여서 인솔 가이드와 다른 조원들과 인사를 나눈 뒤 지하철을 타고 베르사유로 이동했다. 20여분 정도 걸리는 거리라서 가이드랑 이야기를 조금 나누었다. 가이드는 영국 맨체스터 출신으로 대학에서는 지리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프랑스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젊은이였다. 자전거 투어 가이드는 그의 주말 아르바이트로 자전거 타기를 좋아해서 하게 되었다고 한다. 프랑스 오기 전에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다며 반가워했다. 대학에서 졸업한 청년들이 모국에서 전공을 살려 취직하지 못하고 외국을 떠도는 것은 단지 한국만의 상황이 아니었다. 그나마 영어권 출신이 사람들은 영어를 가르칠 수 있으니 행운이라 해야 할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베르사유역에 도착했다.

베르사유는 작은 시골 도시였다. 자전거 보관소로 이동하여 자전거와 자전거 바구니를 하나씩 받아 들고 베르사유 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은 광장과 광장을 둘러싼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각 시장 건물에는 야채, 고기, 과일, 생선 등을 팔고 있었고, 광장에서는 옷과 신발을 파는 노점상들이 상을 펼쳐놓고 있었다. 맛나 보이는 먹거리들이 많았지만, 혼자 배낭여행을 하는 상황이었기에 빵, 오렌지, 체리, 자두 정도만 간단히 샀다. 화장실을 가려했으나 찾을 수 없어서 근처 패스트푸드점에 들어갔는데, 화장실을 사용하려면 전용 동전을 사용해야 했다. 결국 그곳에서 물을 한 병 사고, 화장실 입장할 수 있는 동전을 받았다. 유럽은 정말 화장실 사용에 야박하다.


시장에서의 쇼핑을 끝내고 베르사유 궁전으로 향했다. 베르사유 궁 영지로 들어서자 길고 크게 자란 정원수들이 양 옆에 늘어선 넓은 길을 나왔다. 가로수 뒤로 넓은 평원이 보이는 탁 트인 길을 자전거로 달리니 앞에서 바람이 불며 땀을 식혀 주었다. 그 길에서 만화 속의 마리 앙뜨와네트처럼 드레스를 입은 두 명의 여성을 보았다. 아마도 기차역 옆에 있던 드레스 대여점에서 옷을 빌려 입은 것이겠지만, 그 둘을 보면서 순간 마리 앙뜨와네트가 살던 그 시대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들었다. 마리 앙뜨와네트가 마차를 타고 다녔을 길을 내가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니… 내가 마리 앙뜨와네트가 살던 그곳에 왔다는 게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가이드를 따라 마리 앙뜨와네트의 개인 궁으로 알려진 쁘띠 뜨리아농 (Petit Trianon)에 갔다. 루이 15세가 자신의 정부인 퐁파두르 부인을 위해 지은 별궁인데, 정작 그녀는 완공 전에 죽어서 그곳에 살아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완공 이후 퐁파두르 부인의 뒤를 이은 왕의 또 다른 정부, 드 베리 부인이 살고 있었는데, 루이 16세가 마리 앙뜨와네트의 개인 공간,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쓰라고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궁전에서 그녀는 왕실의 모든 압박을 벗어버리고 모든 것을 그녀 맘대로 할 수 있다고 한다. 심지어 루이 16세조차 마리 앙뜨와네트의 허락 없이는 입궁할 수 없었다고 한다. 왕비의 행복을 위해 별궁을 내준 루이 16세는 마리 앙뜨와네트를 매우 사랑했던 모양이다. 기록에 의하면 그는 당시에 유행인 정부도 두지 않았다고 한다. 쁘띠 뜨리아농의 백미는 정원 안쪽에 지어 놓은 마리 앙뜨와네트만의 전원마을이었다. 그 공간에는 프랑스 농가주택들이 지어 있고, 호숫가에 동화책에서 나올 것 같은 탑이 있어서 마치 동화 속 마을 같았다. 작은 호빗마을 같은 그곳에서 마리 앙뜨와네트는 평민의 옷을 입고 농사도 짓는 등 평민 놀이를 했다고 한다. 새롭게 알게 된 그녀의 독특한 취미 이야기를 들으면서, 백성들과 잘 소통할 수 있었을 것 같던 그녀가 백성들의 혁명에 의해 죽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쁘띠 뜨리아농의 전원마을

다시 가이드를 따라 피크닉의 장소인 그랑 카날(Grand Canal)로 향했다. 이동하는 중간중간 좁은 길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평평하고 넓은 길에 차가 다니지 않아서 자전거를 타기에 참으로 좋았다. 배를 띄우며 놀기 위해 만들었다는 그랑 카날은 정말 거대했다. 카날 끝에 도착하니 저 멀리 맞은편에 베르사유 본궁이 보였다. 카날의 길이가 얼마나 긴지, 그 크다는 베르사유 본궁이 손바닥으로 가릴 수 있을 정도로 작아 보였다. 술을 띄우며 시를 짓는 놀이를 하던 포석정은 거기에 비하면 유치원 수준의 규모였다. 그 거대한 카날을 보면서 프랑스에 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거대한 궁전과 여흥을 위해 사용했을 엄청난 비용을 생각해보면, 혁명이 더 일찍 나지 않았던 거 오히려 더 이상한 것이었다.

그랑 카날을 마지막으로 다시 자전거 보관소에 가서 자전거를 돌려주고 베르사유 궁전, 본궁으로 향했다. 궁전의 굳게 닫힌 문 앞의 광장에서는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배고픔을 호소하던 어머니들의 외침이 들리는 듯했다. 그곳에서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지”라는 말은 마리 앙뜨와네트가 한 말이 아니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녀가 거리의 배고픈 아이들을 보면서 “저 아이들에게 브리오슈를 주시오.”라고 했던 말을 혁명군이 왜곡시킨 것이라 하니 예나 지금이나 정치인들이 말을 왜곡시키는 것은 국가를 떠나 있었던 모양이었다. 불쌍한 마리 앙뜨와네트. 실제로 그녀는 이전 왕비들에 비해 돈도 적게 쓰고, 배우자인 루이 16세도 검소한 삶을 살았다는데, 이미 파탄난 왕실의 재정과 여러 오해들로 불쌍하게 생을 마감했다. 둘 다 이전 왕과 왕비에 비하면 서민 친화적이었었는데,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공평하지는 않은 것 같다.

베르사유 본궁에 들어가 복도를 걷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은 내게 묘한 설렘을 주었다. 마리 앙뜨와네트, 마담 퐁파두르, 태양왕 루이 14세 등 내가 아는 유명한 역사적 인물들이 이 복도를 지나다녔다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빙그레 미소가 지어졌다. 그러나, 너무 기대한 탓인지, 아니면 화려한 건물들을 이전에 너무 많이 본 탓인지 궁전 내부의 모습은 생각보다 평범하게 보였다. 유명하다는 거울의 방은 처음에는 거울의 방인지도 모르고 지나갔다가 나중에 그곳이 거울의 방임을 알고 당황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거울이 귀하고 비싼 물품이었기에 그 정도의 거울을 사용한 거울의 방이 명물이었겠지만, 평소에 거울처럼 빛을 반사하는 유리들로 지어진 높다란 건물들을 보고 살다 보니 그곳의 거울은 조금 조야하다 생각되었다. 베르사유 벽과 천장의 장식들이 아름답기는 했으나, 오페라 가르니에(파리 가르니에 오페라극장)에 비하면 크기만 클 뿐 화려함은 덜했다. 가르니에 극장을 설계한 사람이 베르사유의 화려 움을 넘어서는 인테리어를 추구했다던데, 그가 확실히 성공했다.

베르사유 본궁의 정원은 그 자체로도 넓었다. 한가운데 길 양 쪽 옆에 길게 늘어선 정원수들과 그 뒤에 펼쳐진 15개 에이르는 작은 숲(Grove)들은 단 시간에 돌아볼 수 없는 곳이었다. 금세라도 말이 뛰어나올 것 같던 중앙의 아폴로 분수, 음악에 맞춰 매력적이고 환상적인 분수쇼를 보여주던 거울 분수(Mirror fountain) 등 10개의 분수는 정원에 더욱 풍성한 볼거리를 만들어 주고 있었다. 정원의 길은 넓고 분수를 중심으로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지만, 약간은 외진 느낌이 들어 살짝 겁이 나기도 했다.


정원을 마지막으로 기차를 타고 파리로 돌아왔다. 베르사유 궁전 여행은 유난히 내가 그 시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었다. 아마도 내 기억 한편에 어린 시절 만난 마리 앙뜨와네트가 살아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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