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의 화쟁사상과 통불교론이 불편한 이유

한국사람 치고 원효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많은 이들은 원효가 묘지에서 썩은 물 먹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고, 이해는 잘 안가도 교과서에서 대립과 갈등을 해결하는 화쟁사상을 주창했다는 것을 배웠다. 불교를 공부하면서 특히 한국불교에서 원효는 공부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는 사람이다. 지금은 한풀 꺾였지만, 원효는 한국적 불교인 통불교를 성립시킨 한국불교의 종조로 추앙받기도 했다. 원효 사상의 심오함에는 동의하지만, 원효와 화쟁사상과 통불교론을 볼 때마다 무언가 불편하다.

오랫동안 불교학계에서는 원효를 화쟁사상의 틀에서 해석해왔다. 물론 원효가 화쟁적 입장을 취한 것은 사실이지만, 과연 그걸 그의 독특한 사상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두 대립 사상, 또는 다양한 의견의 통합 노력은 동서 사상사에서 항상 있어왔던 일이다. 가까이는 불교내의 지의도 그랬고, 종밀도 그랬고, 멀리는 칸트마저도 두 가지 방법론의 종합화를 추구하지 않았던가. 이런 상황에서 원효의 화쟁사상을 독자적 사상이라 칭송할 수 있는 것일까?

원효의 화쟁 사상이 다른 통합적 사유와 차별이 되려면, 화쟁 사상 자체의 차별적 논리가 있어야 한다. 박종홍은 이를 개합의 논리, 입파와 여탈의 논리라하며 특수성을 부여했지만, 솔직히 난 그걸 독자적 통합의 논리라 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다른 학자들이 일심에서의 통합이라는 주장은 이해는 되지만, 여전히 그 독창성에는 의문이다. 이에 기반해서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통불교라고 하는 것은 솔직히 어불성설이다. 세상에 어느 불교가 통불교가 아닌 게 있으며, 어느 종교가 통종교가 아닌게 있는가? 심지어 기독교 조차도 초기에는 기존 토착종교의 이야기나 사상을 흡수하면서 새로운 지역에 뿌리를 내리지 않았던가.

외국에서 공부한 학자들을 중심으로 통불교론의 허구성과 그 저변에 깔린 민족주의가 비판되어왔다. 폭넓게 공부하다보면, 그 말에 동의할 수 밖에 없다. 글로벌주의가 대세인 현 시대에서는 로버트 버스웰이 제시하는 범아시아론의 맥락에서 한국불교를 재조명하는 것이 더 나은 대안일 수 있다. 중국, 일본과 다른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내놓아야 한다는 한국불교계의 간절함은 이해하지만, 이러한 민족주의적 태도는 오히려 한국불교를 더 우습게 만드는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 여전히 강세인 원효의 화쟁사상과 통불교, 나아가 화쟁사상을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만능키로 여기는 상황이 내게는 참으로 불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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