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에 대하여.

룸메이트와의 분쟁(?)으로 하우징 모임의 사람들을 만났다. 2주동안 새벽에 샤워를 가장하여 벽을 치고, 문을 꽝 닫고, 음악의 볼륨을 높이다가 결국은 새벽 4시에 청소기를 돌리는 미친 짓을 행한 룸메이트에 대해 그들은 아무런 처벌을 제안하지 않았다. 12월에 그녀의 계약이 끝나니까 라는 이유로.

 

그들과 만난 이후로 가슴이 답답하고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그녀에 대한 분노라 생각했으나, 지금은 그들에 대한 분노라는 것을 알 게되었다. 

내가 분노를 느끼게 된 것은 원칙과 정의가 어떻게도 지켜지지 않는다는 느낌에서였다. 그녀는 분명 공동체의 룰을 어겼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었다. 그럼 그에 대한 처벌이 행해져야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유는 그녀가 나갈 경우 하우징 모임에서 그 돈을 지불해야하는데 그 돈이 없다는 현실적 이유때문이었다. 그래서 아무런 제재 없이 그녀는 그녀의 기간을 채우게 되었다.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것에 대한 억울함. 그게 나의 분노 감정의 시작점이었다.

그리고.. 무능력한 대표는 이 일로 대학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결과 내 이름 또한 그녀와 함께 대학원장에게 제출되었다. 내가 그동안 그녀의 새벽만행을 중재자들의 만남까지 참았던 것은 일을 더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게 먼가… 내가 그동안 계속 그녀의 새벽 만행을 개인적으로 보고 했음에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주지 않더니 결국 청소기 돌리는 상황까지 내버려둔게 아닌가. 그리고 결국은 일을 이렇게 만들다니. 나의 그동안의 인내가 무의미하게 되어버린 것. 그 또한 나의 분노 감정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억울함, 배신감, 절망감… 이런 감정이 결국 분노를 만드는 것이었다. 물론 그 모든 것의 아래에는 “나의 기대”라는 것이 있었다. 기대는 나의 희망사항이고, 나의 원칙이고, 나의 세계관이다. 결국 분노란 나의 세계관이 부딪혀 깨어지는 것에 대한 반응이 아닐까. 그 말은 분노를 잘 관찰하고 잘 극복하면, 나의 세계를 좀 더 확장시킬 수도 있고,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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