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는 참는 게 능사가 아니다.

언제나 우리 부모님은 나에게 말했다. “참아라.” 그래.. 맞는 말이다. 참을 인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고 옛말에도 그러지 않았는가.  분노의 불길이 크게 휘감을 때는 일단 참는 것이 당연지사 최선의 선택이다. 비이성적인 행동이 불러올 결과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은 결코 쉬운게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부모님 말씀이 백번 맞다. 그러나, 이후의 후속책에 대한 이야기 없이 그냥 계속 참으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분노한 사람의 정신건강에 별로 도움이 안된다.

많은 사람들도 그러하겠지만,  나는 부당하다고 느껴질 때, 억울하다고 느껴질 때 분노가 강하게 일어난다. 그래서 어떤 경우는 그 분노가 참는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억눌려 있다가 점점 거세게 일어난다. 분노가 일어날 때는 일단 호흡을 가다듬고 냉정을 찾는 것이 중요하지만, 분노를 계속 억누르는 것은 좋지 않다. 격렬한 감정이 가라 앉으면, 차분하게 무엇에 분노하고 있는 것인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분노의 원인제공자에게 차분하게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는 게 필요하다. 일주일 이내에.

아주 오래 전 틱낫한 스님의 책에서 일주일 이내에 분노하게 된 사실들을 차분하게 상대에게 이야기하라는 이야기를 읽었음에도, 나는 이번에도 참는 것에만 치중했었지, 그것을 실행하지 못했다. 물론 이유는 있었다. 공동체의 화목을 위해서는 참아야한다는 강박관념이었다. 잡음과 분쟁을 싫어하는 한국 사람에게 뿌리박힌 정서.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것.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바람직하지 않은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나를 포함한 한국인은 분노를 억누르라는 요구만 받았지, 그것을 다스리는 법에 대해 배운적이 없다. 그래서 울화병은  분노를 지혜롭게 다스리고 표현하는 법을 못배운 한국인에게 유독 나타나는 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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