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혜시의 표주박

마찬가지로 2011년 12월에 네이버에 올렸던 글이다. 말투를 조금 수정하였다. (http://blog.naver.com/schaffnung/110126693843)

장자는 위트 넘치는 중국철학자로 다음은 내가 좋아하는 좋아하는 구절 중의 하나이다.

혜시가 위나라 왕에게 받은 박씨를 심었더니 다섯 섬(800L정도?)이나 되는 큰 열매가 열렸다. 물을 담자니 단단하지 못해서 깨져버리고, 반을 쪼개서 바가지로 쓰자니 너무 납작해서 아무것도 담을 수가 없어 부숴버렸다.

이 말을 듣고 장자가 말했다.

“박이 크니, 그물에 집어넣어 물위에 띄워
부표(일종의 튜브)로 사용하면 되는 것을… 왜 꼭 물만 채우려 하는건가?”

<소요유 12>

세상에 태어나 세상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각 물건의 이름과 함께 그 용도를 배운다. 비슷하게 생긴 그릇들이지만 밥그릇은 밥을 담는 그릇이고, 컵은 물을 마시는 그릇이기에,  컵에 밥을 담아먹는 사람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컵의 역할은 물을 담는 것으로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컵이 깨지기라도 해서 물을 담을 수 없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이제 컵을 쓸모없다고 생각하고 버린다. 그 깨진 조각은 흑길을 장식하는 데 쓸 수 도 있는데, 이미 고정된 역할을 해낼 수 없는 것은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무의식적 사고 작용 때문이다.

사람들의 무의식적 사고는 이 한계 안에서 작동한다. 이야기일 뿐이겠지만, 당대에 뛰어난 사상가로 알려진 혜시조차 쉽게 박의 쓸모없음을 말한다. 장자는 그런 혜시에게 일침을 가한다. ‘왜 꼭 물만 채우려고 하는가?’

내가 장자를 좋아하는 것은 이런 그의 모습 때문이다.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창의적 사고 방식. 장자는 튜브처럼 묶어서 허리에 매달면 몸을 띄워주지 않겠냐는 말도 한다.  박 안에 물을 채우려고 할 필요도 없고, 안은 비워둔채 밖을 채워도 된다.  박이라는 이름을 둘러 싼 제한요소들을 버릴 때 “쓸모없음”은 “쓸모있음”으로 탈바꿈 하게 되고 일명 창조적 아이디어가 번뜩일 수 있는 것이다. 장자의 위트 넘치는 창조성은 선불교에 계승되었으며, 한 한국영화는 이를 재치있게 활용했다.

밑빠진 독에 물채우기!  in 달마야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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