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진실을 판단할 수 있을까- 이근안의 격정토로를 읽고1

이또한 네이버로부터.

이근안… 다들 기억이나 하실까나요?

80년대 암울했던 군사 독재 시절에 명성을 날렸던 최고의 고문기술자.몇년전 목사가 되었다는 기사를 본 이후 제 기억 너머로 사라진 사람이었습니다.그가 목사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두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목사를? 아마도 진정한 참회를 한듯? 사람이란 쉽게 변하는 존재가 아닌 것을 알지만, 그래도 믿고 싶었었습니다. 진정 참회하고 사람이 변했을 것이라고.그러다 오늘  트위터에서 그와 관련한 트윗을 보았습니다.

누군가 이근안에 대한 2010년도 일요신문 기사를 트윗에 올렸었고, 정혜신님이 코멘트를 포함한 리트윗을 해주셨던 것이었습니다.  기사의 요지는 당시에 행했던  것은 고문이 아니라 심문이었고… 심문은 예술이라는 것. ㅠㅠ 너무나 충격이었습니다.

http://www.ilyoseoul.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140

그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었던 것이었습니다. 자신은 당시에 애국을 했을 뿐이라는 그의 말에서 나치전범들과 똑같은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그런데 기사는 묻더군요. 피해자들의 이야기와 상반되는데 과연 누구의 입이 진실을 말하는 것일까? 라고.

오! 마이! 갓!  피해자들의 아픈 목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이 기사만 읽었을 때, 사람들은 그래 이근안은 잘못이 없을지도 몰라라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을 거라는 우려는 저만의 기우일까요?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 기자의 이 질문이 저는 더 충격이었습니다.

진실을 판가름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오죽하면 이황 선생이 싸우는 두 하녀들의 말을 들으면서 네 말이 옳다, 네말도 옳다 라고 하셨을까요? 그래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진실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까.

가장 기본적인 것은 사실(fact)에 의거하는 것입니다. 그의 행위에 의거한 피해자가 있는가. 실제로 피해를 확인할 수 있는가. 무엇보다도 우리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가해자는 자신의 행위가 피해자에게 어떤 고통을 주는지 상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나서 피해자의 진실성을 살펴야 합니다. 혹시 피해가 과장된 것은 아닌지 검토해봐야 할 것입니다. 한번 자라보고 놀란 가슴은  솥뚜껑만 보고도 놀라기 쉽기 때문입니다.

이에 맞추어서 이근안 사건을 살펴보겠습니다. 일단 고문 피해자가 한 둘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까지도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문후유증에 시달립니다. 며칠 전 이근안의 고문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고생하시는 김근태님께서 따님의 결혼식에도 참석못하실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셨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11209029023 김근태님의 몸이 고문으로 망가지신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증거입니다.  이근안씨 말처럼 정보를 얻기 위해 그냥 좀 때리기만 했는데 김근태님이 다리를 절었고, 여러 후유증을 갖게 되었다? 지나가던 개도 비웃을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분명한 증거가 있기에 피해가 과장되었다고 할 수 없겠지요. 증거조작의 가능성? 어느 누가 그렇게 자신의 몸을 일부러 망가뜨린답니까? 그것도 단지 한 사람이 아니라 그 많은 사람이.. 무엇을 위해?

솔직히 저는 기자분의 의도가 이해가 안갑니다. 이근안씨가 어떤 식으로 자신의 행동을 미화하든 고문은 발생했던 사실입니다. 그런데 왜 어느 쪽이 진실을 말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투명한 진실을 흐리시려는지 말입니다.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이근안씨와의 대담을 그대로 싣는다고 하셨습니다만, 그것은 이근안씨의 자기 합리화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앞서 언급한 이황 선생이야기에서 이황 선생이 두 하녀에게 각각의 이야기가 옳다고 하신 것은 누구나 사건을 말할 때는 자신에게 유리한 입장에서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사소한 사건의 경우에는 시시비비를 따지지 않는 이황선생의 태도가 옳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근안씨 고문 사건처럼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한 엄청난 사건을  객관적 태도라는 함정에 빠져 진실여부에 대한 판단자체를  유보를 하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객관성은 사실 판단과 가치판단의 과정에서 지켜져야 하는 원칙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사실판단이 끝나고 가치판단의 영역으로 넘어간 사건을 다시 사실판단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와서 진실을 흐리시는 기자분의 태도를 어떻게 해석해야할까요?단지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의 문제를 구분하지 못한 미숙함이라고 보아야 할까요?

진실이라는 조각난 사실들을 다 맞출 때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맞추어진 그림을 흐뜨러뜨리는 것은 새로운 진실을 세우는 일이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진실 왜곡의 시작이 될 수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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