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이름을 쓰는 것이 사대주의의 발로일까?

미국에 올 때 고민했던 것 중의 하나가 이름이었다. 나는 당연히 내 한국 이름을 쓰려고 했으나,  내 친구들이 나를 말렸다. 이름은 부르기 쉬워야 자주 부르게 되고, 쉽게 기억할 수 있기에 쉽게 가까워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마음 한켠에 꼭 그래야할까 라는 생각이 남아있었지만, 그래도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며칠을 고민해서 미국식 이름 Lucy를 지었다. 이름은 지어두었지만, 사실 쓸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오자마자 첫날, 핸폰을 개통하러 간 자리에서 두세번이나 내 이름을 못 알아듣는 직원을 보면서 결국 나는 Lucy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가끔 미국에 계시는 분들의 글을 보면 영어이름 쓰는 문제를 가지고 한말씀씩 하신다. 얼마 전에도 블로거인 조성문님 페이지(http://sungmooncho.com/2014/04/06/about-koreans-using-english-names/)에서 그 문제가 언급되었다. 그분은 중국, 한국, 대만을 제외하고 다른 나라 사람들은 자신의 본래 이름을 쓰는 것을 한번 생각해보자는 취지에서 글을 쓰셨고, 언제나처럼 댓글은 편의성을 위한 영어이름과 자신의 고유성을 지키는 한글이름의 두 입장으로 나뉘었다. 그 글들을 읽으면서 웬지 나도 한국어 이름을 써야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불편한 마음이 들었었다. 그러다 다음의 의문이 들었다. 왜 우리는 영어이름을 쓰는 것을 자신을 버리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을까?

조선시대 양반계층은 기본적으로 세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어릴 때 부르는 이름인 아명, 공식적 이름인 관명, 그리고 문인이나 예술가들이 스승으로 부터 받는 호. 물론 그 외에 다른 이름들이 있었다.  또한 한자가 들어오기 전에는 토박이말 이름과 한자이름 둘을 공용하여 쓰던 시기도 있었다고 한다. (http://www.rootsinfo.co.kr/info/home/story_1.php) 한국 뿐만 아니라 중국도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이름을 갖는 것이 흔하디 흔했다.

이러한 전통을 생각해볼 때, 왜 한국, 중국, 대만 사람들이 영어이름을 쓰는 것인지 쉽게 답이 나온다. 이들에게는 자신의 고유성을 담보하는 하나의 이름을 평생 쓰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었다. 이름이란 자신이 처한 시기와 상황에 따라서 언제든지 다양하게 바뀔 수 있는 것이다. 때로는 자신이 사회적으로 성취한 것에 대한 대가로 특별한 이름을 왕으로 부터 하사 받을 수도 있는 것이기에 다양한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영예로운 일에 속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영어이름 사용 또한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왜 사람들은 영어이름 쓰는 것을 자신의 고유성을 버리는 것으로 보는 견해도 갖게 되었을까? 이는 한 가지 이유로 단정해서 볼 수 없지만, 몇 가지 영향들을 가정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근대시대를 거치면서 강조된 개인주의와 민족주의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전 한국의 문화는 개인의 독자성보다는 공동체 속에서의 개인을 중시했다. 나라는 존재는 관계 속에서 다양한 모습을 갖는 게 당연한 것이었지만, 근대 이후 관계 속에서 영향받고 규정되는 개인이 아닌 독립적이고 고유한 개인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한 개인의 고유성은 그 이름으로 규정되고 지속된다는 전제가 암묵적으로 사람들의 머릿 속에 잡은 것이라 생각한다.

민족주의 부분은 조금 복잡하다.  근대는 민족마다 자신의 국가를 세우던 시기이다. 그 와중에서 한국은 국가를 잃어버렸고, 잃어버린 국가를 되찾기 위한 강한 민족정체성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당시의 상황과 일본의 식민교육으로 인해 민족적 열등감도 가지게 되었다. 해방 이후에도 당시 형성된 민족적 열등감은 전혀 약화되지 않았고, 조선시대 사대주의 비판이 현재 한미 상황과 오버랩 되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우리의 것, 주어진 것을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마음과 영어 이름을 짓는 행위를 현재의 강대국인 미국을 따라가려는 사대주의의 일환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형성된 것이라 생각한다.

영어이름을 짓는 것을 사대주의의 일환으로 보는 관점은 사람들이 미국 생활 중에 만나는 외국인들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외국 친구들의 왜 넌 네 원래 이름을 안쓰느냐는 질문, 우리보다 더 길고 복잡하며 외우기도 힘든 이름을 고수하는 다른 나라 친구들의 모습들이 영어이름 쓰는 사람의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사실 온라인에서 많은 이들이 닉네임을 썼다. 그러나 아무도 그 이름을 쓰는 것을 가지고 정체성 문제를 문제삼지 않는다. 그러나 유독 영어이름을 쓰는 것을 문제 삼는 것은 예민한 것이 아닐까? 이름은 그저 이름일 뿐이다.

나에게는 여섯 개의 이름이 있다. 부모님께서 주신 이름 혜경. 호적에 올라가 있는 항렬에 따른 이름 혜근. 성당에서 받은 세례명인 까밀라(Camilla), 처음 인터넷 통신 할 때 쓰던 녹두미인,  게임을 하면서 온라인 활동하면서 썼던 까밀, 그리고 미국에 와서 쓰게 된 영어이름 루시(Lucy),  엄밀하게 말하면 혜경과 혜근은 같은 이름을 상황에 따라 다르게 표기한 것 뿐이고, 까밀은 까밀라를 축약해서 쓴 것이니 네 개의 이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네 가지 이름 모두 나를 지칭한다. 그 이름들을 통해 사람들은 나라는 존재를 인지하고, 기억해주었고, 나는 그 네 가지 이름을 통해 세상과 소통해왔다. 어느 이름을 쓰든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이 어떤 사람이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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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lucyjee

I am Korean and have studied Eastern philosophy and reli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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